며칠전 영화평론가 황진미씨가 이런 트윗을 남겼더랬다.


이를 본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 이런 답글을 남겼더랬다.







트윗을 남기자 마자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리트윗했다. 남녀 소득 격차의 진실에 많은 이들을 눈 뜨게 했구나 싶어 뿌듯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내 트윗을 리트윗한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내게 쌍욕을 퍼부었다.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다면 반론을 펼쳐주면 좋으련만 그런 이들은 드물었다. 밑도 끝도 없이 '헛소리한다' '개마초 새끼' 이러는 거다. 

그 사람들의 머리 속엔 이런 의문은 떠오르지 않나보다. 그럼 여자에게 싼 값으로 시킬 수 있는 일을 경영자들은 왜 비싼 돈을 줘가며 남자를 고용하는 것인가?

이 의문을 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자 자영업자는 왜 남자만큼 벌지 못할까?





워렌 퍼렐은 1970~73년까지 
전미여성동맹(NOW)의 대표 이사였다. 남성으로는 3차례나 당선된 유일한 인물이다.

미국도 남녀간의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 1970년대 미국은 남자가 1달러 받을때 여자는 59센트를 받았다. 그는 남녀차별의 상징으로 59센트가 박힌 뺐지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한참 후에야 "남자에게는 1달러를 줘야 하는 일을 여자에게는 59센트만 주고 시킬 수 있다면 도대체 경영자들은 왜 남자를 고용할까"는 의문이 떠올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주장을 뒤집게 된다.

워렌 패럴은 여성의 저임금이 남자 사장 때문이라면 자영업에서는 남녀 수익 격차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여성 사장이 스스로를 차별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녀 자영업자의 소득을 연구했다.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여성 자영업자의 수익은 남자 자영업자의 49%로 여성 임금 비율 80%보다 오히려 더 낮았다. (2004년 기준)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높은 소득과 안락함을 동시에 얻을순 없다

'실제로 노동부나 여성워크넷의 ‘여성직종TOP20’을 살펴보면 회계, 경리, 일반사무, 비서, 안내, 고객관리 등 모두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투자 위험이 없고, 돌아다닐 일 없고, 근무 환경이 쾌적하고, 통근 거리가 짧고, 야간 교대가 없는 등 근무 조건이 편한 특징이 있다. 저자는 이것이 여자들이 남자보다 적게 버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근무 조건을 선호하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편안한 일은 저임금 업종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아래 여성 선호 직종 임금 평균에 따르면 이 직종들은 대부분 직장인 임금 평균인 3,100만 원보다 한참 부족한 연봉을 받고 있다. 근무 환경이 좋으면서도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남자보다 많이 버는 여자들의 비밀 25 출판사 리뷰



남녀간의 소득 격차는 여성에 대한 차별 때문이 아니다. 여성이 선호하는 직업이 제한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워렌 퍼렐의 주장이다. 직업선택에 있어 남자는 수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반면 여자는 자유로움과 안전함을 더 중시한다. 부의 축적이 최우선이냐는 물음에 남자는 76%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여자 2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높은 수익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전근과 오지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장시간 근로도 마다하지 않고,야간 근무도 마다 하지 않는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비율도 남자가 압도적으로 높다. 업무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99%는 남자다

앞에서 여성 자영업자의 소득도 남성 자영업자보다 낮다고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남성 자영업자는 주당 40시간 일하는데 여성 자영업자는 30 시간만 일하기 때문이다. 




소득 차이의 결정적 요소는 가정이 있느냐 없느냐

워렌 퍼렐은 소득 격차의 본질은 부양의 의무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남녀뿐 아니라 같은 남자들 간에도 부양의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소득 격차가 크다고 한다. 같은 나이에 같은 대학 졸업에 같은 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결혼을 한 단독 부양자는 미혼 남성보다 31% 더 높은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이는 남녀간 소득 격차 20%보다 더 높은 것이다. 미혼남녀의 경우에는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10% 더 높은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성별 차이 때문에 임금의 격차가 생긴다는 고정관념은 잘못된 믿음이다. 기업이 같은 일을 남자에게 더 비싼 돈 주고 시킨다면 남녀차별로 처벌받기 전에 자본주의의 원칙에 따라 도산이라는 벌을 받게 된다. 

그러니 차별에 초점을 맞추는 건 도움이 안 된다.  여자들도 고소득 올릴 기회를 잡으면 된다. 그럴려면 자유로움과 안락함을 포기하고 위험과 고단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 쯤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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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석방시위 논란과 월드컵 노출녀

미권스의 글래머 회원이 비키니 인증샷 올렸을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던 꼴페미들..

주진우가 정봉주에게 보낸 접견서의 '가슴 인증샷 대박' '코피 조심'이란 단어를 트집 잡아 억누르고 있던 말을 봇물 터트리듯 터트렸다. 안심하고 공격할수 있는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페미의 제 1원칙이 뭔지 아는가? 같은 여자는 까지 않는 거다

제 2원칙은 뭔지 아는가? 모든 것을 남자 탓으로 돌리는 거다. 

어제
트위터의 정봉주 비키니녀 논란에서도 이런 원칙이 칼같이 지켜졌다. 



꼴페미들은 말한다. '비키니 인증샷 자체는 문제없다. 하지만 이를 남성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미권스의 글래머들은 비키니나 속옷 인증샷 올리면서 남자들이 성인군자같은 태도를 취하길 바랬을까? 그녀들은 남자들의 뻔한 반응을 예상 못하고 있었을까?  그녀들은 그런 반응까지 함께 즐기면서 놀기 위해 올린거다. 

그녀들이 던지 유희에 남자들이 유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화답이다. 유희를 던졌는데 왜 진지하게 정색 하길 바라나? "왜 세지보다 가슴에만 주목 하느냐? 진보 진영 남성도 여성을 객체로만 보고 있다"고 깽깽거리는데 지나가던 강아지도 웃을 소리다.

왜 가
슴만 보냐고? 비키니 인증녀들이 새로운 메시지를 들고 나왔나? '나와라 정봉주' 미권스 회원이라면 누구나 외치는 구호다. 이를 새롭고 과감한 방식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방식에만 집중하고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꼴페미들이 하도 답답하게 굴어서 내가 비유를 하겠다. 월드컵때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거나 몸에 두르고 응원한다. 조국의 승리를 염원하는 숭고한 메세지를 담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하는 거라 주목받긴 쉽지 않다.  

런데 태극기를 젖가슴에다 새겨넣고 응원하는 여성이 있다면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과감함에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이 꼿힐수 밖에 없을거다. 이해가는가?

미들 말대로라면 월드컵 거리 응원의 노출녀도 가슴에 주목해선 안되고 '조국의 승리에 대한 염원'을 읽어야 된다는 거다. '대박이다' '코피 조심' 이런 말도 해선 안된다. 성희롱이다

진보라는 타이틀을 단 수많은 여성들이 이런 수준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과장 아니다. 내가 어제 트위터에서 하루 종일 이 주제로 검색해 보고 기가 막혔다.

꼴페미들은 뻑하면 진보 남성들도 여성에 대한 시각은 수꼴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꼴페미들의 극단성과 경직성이야 말로 수꼴과 도토리 기재기다. 최진실 자살과 장자연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 주진우 기자마저 '대박' '코피조심' 멘트로 성희롱범 낙인을 찍는 게 꼴페미들의 패악질이다.






똥습녀의 가슴은 보지 말고 메시지만 읽어라?





월드컵 응원녀의 노출이나 정봉주 비키니녀의 인증샷이나 즐겁게 놀자고 하는 짓이다. 남자들에게 성적인 시선을 제거하고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만 가질 것을 요구하는 건 참 뻥찌다. 이런 게 진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진보는 게이나 고자밖에 남지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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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가 품위있고 지적이며 거기다 성적으로 고결한 '사제와 수녀'의 이미지까지 가지게 된 것은 대체 언제부터 였을까? 과거에 아나운서를 보는 시선은 지금과는 전혀 딴 판, 시쳇말로 지저분했는데 말이다. 

나도 어렸을때 어른들이 모여서 TV보다가 유명한 중년 아나운서가 나오면 난잡한 여자 관계를 거론하며 혀를 차는 걸 흔히 봤다. 그런 아나운서가 최소 한둘은 넘었다.

성상납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연예인이 아니라 아나운서에 대해 떠도는 소문을 듣고 나서였다. 고위직 남자 앵커한테 이쁨보인 젊은 여자 아나운서가 같이 뉴스 진행하고 그러다 바람났다는 이야기는 아줌마들의 단골 안주거리였다. 

69년생인 강용석한테는 이런 이야기가 익숙할거다. '아나운서 될려면 다 줘야 한다. 그래도 할 수 있겠냐?'고 한 것은 어두운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조언이다.
 
이를 성희롱으로 모는 것은 이해안간다. 아나운서 세계에 대해 들은 게 있는데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숨겨야 된다는 말인가?

국회의원이 '카더라 통신'을 전했다는 게 문제라는 반론이 있을수 있겠다. 하지만 한 사람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확인되지 않은 시중의 부정적인 소문이라도 일단 전달해서 판단하게 만드는 건 필요성이 인정된다. 소문도 언젠가는 진실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SBS가 연예인 매춘과 성상납 의혹을 보도했을때도 연예인 노조에서 방방 뛰었다. 600여명이 서명했다. 그런데 지금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 있나?

그리고 그 발언이 있던 장소는 술자리였다. 술자리에서 사적으로 나눈 말을 공적인 매체에서 끄집어 내서 성희롱으로 여론몰이하고 재판까지 가게 된다면 지금이 막걸리 보안법 시대나 다를 게 뭐가 있다. (물론 강용석이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개그맨을 고소한 건 코미디)

내가 이 일을 심각하게 보는 건 강용석 하나만 정치 인생 끝나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사례가 되서 나중에 우리편(?)과 네티즌들한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까봐 걱정되는 거다. 검찰을 섹검이라고 욕했다가 고소미 먹을 네티즌들이 안나온다고 장담할수 있을까. 지금은 적(?) 하나 죽였다고 웃지만 나중에 피눈물 흘릴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전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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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교란 학적부에서 해당자의 기록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으로 퇴학보다도 높은 징계다. 퇴학은 학적 기록이 남아 그때까지 교육받은 내용이 인정되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 재입학이 가능하지만 출교는 아예 학적이 없어져 재학했다는 증명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다. 따라서 재입학은 다른 대학 편입마저 불가능해진다. 학생 자격을 영구박탈하는 '사형선고'와 같다.

출교가 대학 학칙에 등장한 것은 1991년 성균관대에서 102명의 대규모 부정입학자가 적발된 사건에서 연유한다. 이들의 학적 정리를 위해 이듬해 교육부에서는 입시 조항에 출교 조항을 넣을 것을 지시했다. 당시는 입학 자격이 없는 학생의 기록을 무효화할수 있는 조항이 없었던 모양이다.

최근 동기 여대생을 성추행한 고대 의대생 3명에게 출교 처분이 내려졌다. 1인 시위와 인터넷을 통한 여론몰이로 학교측을 압박한 수많은 사람들은 '뒤늦었지만 상식적인 조치'라며 환호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안심하고 학교를 다닐수 있게 된 것을 가장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학적을 삭제하는 출교는 입학 자격이 없는 부정합격생들에게만 적용되야 하는 처분이다. 고대 의대생들이 성추행을 저질렀지만 그것은 입학 이후의 일이다. 입학 이후에 저지른 잘못때문에 정당한 입학과 학업 기록을 삭제시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정수근이 잦은 음주 사고와 동료 폭행등으로 야구계에서 추방되었지만 그것때문에 그가 남긴 기록까지 무효로 만들수는 없는거다. 

성추행 의대생들이 출교 취소 소송을 한다는데 100% 승소할거다. 그때가서 또 법원이 가해자편 든다고 욕하지마라. 출교 자체가 법치를 벗어난 비상식적인 조치다. 2006년 교수를 감금한 고대생 7명의 출교 조치도 법원에 의해 전원 취소됐다. 피해여학생이 마음 놓고 학교에 다녀야 되는 건 맞는데 그러기 위해서 원칙을 벗어난 처벌을 행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추행범에 대한 증오에 눈이 멀어서 비상식을 상식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월드컵 한일전때도 이렇게 한 마음으로 뭉치진 않았을거다. 대중은 감성적으로 휘둘릴수 있어도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성적으로 바로 잡아줘야 한다. 하지만 평소 원칙과 이성을 외치던 진보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이  이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만 지키고 있다. 여성과 소수자 문제에서 이런 일이 한두번은 아니지만 답답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만이라도 이런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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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목적은 뭘까.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일거다. 하지만 나는 거꾸로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우리 나라에 대해 깊은 수치심과 서글픔만 가지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여 반만년 동안 931회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단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블라블라....

국민학교에서 역사를 처음 배울때 교과서에서 봤던 기막힌 내용이다. 이거
몇장만 더 펼치면 구라라는 거 뽀록난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었다. 왜 우리 민족은 남의 나라의 평화만 사랑하는걸까?  평화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침략만 당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나는 슬펐다. 우리 민족이 오죽 못났으면 어린 아이한테도 안먹히는 저런 거짓말을 다 할까 속으로 울었다.

ㄱㄴㄷㄹ을 몰랐을때도 우리 나라가 대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 귀에다 대고 말해준 어른은 없었지만 TV보면서 눈치챘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을 선진국이라고 부르며 빨리 쟤네들 쫓아가야 된다고 허구헌날 타령 하길래 우리 나라가 저만큼은 못사는구나 했다.

그렇다고 서럽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 내 집이 꼭 갑부여야 만족하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부자는 아니더라도 부족한 것 없이 먹고살만한 집에만 태어나도 불만갖지 않고 산다. 미국처럼 돈이 남아 돌아서 떵떵거리지는 못해도, 먹는건 좀 남아 돌아서 음식을 쓰레기로 버릴 정도는 되는 나라에 태어난 게 어딘가.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이 해골처럼 되는데 말이다.

나는 이렇게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던 아이였는데 학교 들어가서 역사를 배우면서 달라졌다. 우리 나라에 태어난 것과 사는 것에 위축되고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을 알아 갈수록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은 허다했다. 하지만 그 나라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가 다른 선진국들처럼 못사는 것은 한심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불행했던 역사를 그대로 서술하는 것보다는 윤색하고 미화하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다. 하지만 뻥(?)도 정도껏 쳐야한다.  뻥이 크면 현실은 더 초라하고 쓸쓸하다. 

 "평화는 사랑하는 민족 드립"처럼 어린 아이도 속지 않을 개뻥을 치면 나같은 부작용도 나타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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