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12골을 넣는 센터포워드가 있다. 괜찮은 득점력이지만 최고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윙포워드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윙포워드로서 12골은 어마어마한 (?) 득점력이다.


 '지금으로치면 피구나 네드베드다' '드록바급은 되었다'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위상을 논할때 세계 톱클래스 선수들과 차범근을 동급에 놓고도 표정 하나 안변하는 차빠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 바탕에는 차범근이 윙포워드였다는 확고한 믿음 있기 때문이다. 윙포워드로서 연평균 12골씩 넣었으니 피구나 네드베드 드록바에 꿀릴게 없다 이런 식으로 나올수 있다.  

그런 차빠들에게 가슴 철렁한 소식이다. 지난 4월 월드컵특집 人터뷰 차범근편에서 차범근이 분데스리가 시절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봐라.  




한국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을 보셨잖아요. 스트라이커로의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대표팀에서는 주로 윙포워드의 개념으로 뛰었는데, 이후 독일에 가서는 중앙 스트라이커로 뛰게 됐죠. 독일에서는 3-5-2 포메이션을 많이 썼는데, 전방 투톱 중 한 명으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현역 마지막 2년 정도는 미드필더로 뛰었고요.

일단 제가 워낙 스피드가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는 윙 역할로 충분했어요. 그것만으로도 통했으니까요. 그런데 독일 가서는 스트라이커로 뛰어야 했고, 빠른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았죠. 그런 면에서 상당히 어려웠지만, 반대로 그런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었어요.

당시 유럽에서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라고 하면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만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답답한 면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원래 윙포워드 출신이기 때문에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측면으로 나와 스피드를 살려 드리블을 시도했어요. 그런 부분이 잘 통했고, 팬들도 많이 호응을 해줬죠. 결국 대표팀에서 윙포워드로 플레이했던 경험이 유럽에서 스트라이커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시야나 경기운영의 폭을 넓혀줬던 것 같아요.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00416094801682&p=m_daum


 

 

나도 예전에 말했잖아. 차범근은 국대에서 윙포워드였다가 분데스리가로 가서는 센터포워드로 전환했다고.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에서도 역대 센터포워드 순위에 차범근을 9위로 올려놓았는데 차범근이 윙포워드였다고 우기는 차빠들 보면 속터진다. 본인까지 인증했으니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솔직히 별 수는 없을 것 같다. 차범근에게 유리한 자료는 근거없는 허위 사실이라도 쉽게 퍼진다. 마테우스가 우에파컵에서 차범근을 전담마크하다 실패하고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최고의 공격수'다고 했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얼마전 GQ 코리아의 인터뷰에서 마테우스가 차범근을 전담마크한 적은 없었다고 했지. 

하지만 차범근에게 불리하다 싶은 근거는 좀 처럼 퍼지지 않는다. 저 인터뷰도 4월달에 했는데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차범근은 여전히 윙포워드잖아. 연평균 12골의 득점력도 센터포워드로서 뛰어난건데 만족못하고 포지션까지 바꿔치기해서 얻는 것이 뭐냐. 그래봤자 우리끼리나 하는 마스터베이션이지 해외에서 차범근을 피구,네드베드,드록바급으로 인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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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ㄹㄹ 2010.06.20 11:38

    고아라 까지마라 씹새들아 나만 까게

  • ㅇㅇ 2010.06.20 12:05

    차범근은 당대 최우수 외국인 선수였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않냐??

    • 공정하게 2010.06.20 21:02

      하지만 펠레나 마라도나 급은 안되지....솔까말 프리미어리그의 드록바와 다른게 뭐냐 솔직히 득점력은 드록바가 더 낫지

    • 꿈깨라 ㅄ아 2010.06.20 22:13

      차범근만큼 날린 한국선수도 없잖아..
      개허접 허정무도 감독하고
      결정력 제로 박주영도 있는데
      차범근이면 양호하지

    • 공정하게 2010.06.20 23:09

      차범근도 감독하다가 성적 개판내고 짤린걸로 아는데 ㅋㅋㅋ 차범근이 날리긴 했지만 레전드는 아니지

    • 러어ㅣㅏㄹ 2012.08.19 16:45

      너무 막연한것 같아요

  • ㅎㅎ 2010.06.20 16:21

    고아라 까지마, 내가 깔 거야

  • ㅉㅉ 2010.06.20 19:10

    축구 블로그인척 하지마 병신아, 그래봤자 넌 레진한테 죽었다 깨어나도 안 돼.

  • ^^ 2010.06.21 00:51

    제 의견은 레진님은 레진님대로 고아라님은 고아라님대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 둘다 좋습니다 메이저가 있음 마이너도있겠고요, 비교하는건 자유지만 비난은 좀... 어차피 블로그라는게 개인 자유공간 의 의미가 제일크고 자체생산 컨텐츠보단 수집된자료를 보다 읽는이들에게 맛깔스럽게 정리,전달 해주는 역할이큰데 그부분에서는 고아라님도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봅니다 가벼운 재미적인 측면에선 제목에 걸맞게 딱 찌라시 스럽게 독자들을 즐겁게하지만 이러한 일반 이슈측면에선 약간의 부정확성과 논란거리가 있지만 그것또한 이블로그의 다른 재미겠지요 뭐 안티도 팬이란 부분에선 간혹 비난하시는 분들의 멘트에서도 보다 좋은 정보를 원하는 재촉이라 느껴지네요 어쨌든 고맙게 잘 보고 있고 꾸준한 화끈한 업데이트를 기대합니다 주인장님 ^^

  • aa 2010.06.21 04:17

    메이저고 마이너고 그냥 이 새끼는 병신

  • ㅇㅇㅇ 2010.06.21 07:36

    인터넷에 차빠들이 참 많어.
    톡 까놓고 말해서 좀 잘한 용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무슨 차범근을 세계 축구 레전드처럼 신격화나 하고...거 참.

    • ㅎㅎㅎ 2010.06.21 19:20

      어린ㅅㄲ ㅎㅎㅎ

    • 공정하게 2010.06.22 19:46

      차라리 드록바를 레전드화 시키는게 빠를듯 솔까말 독일애들 아니면 차붐 누가아냐?

  • Favicon of https://rightside.tistory.com BlogIcon 세라r 2010.06.21 10:07 신고

    어라... 나 왜 차단이지 ㅠㅠ

  • Favicon of http://sogb.tistory.com BlogIcon 곽밥 2010.06.21 18:54 신고

    독일가서 물어보세요 피구,네드베드,드록바가 차붐급 되는 선수냐고

    • 킬리하젤 2010.06.22 19:49

      유럽에서 유학할때 독일애들한테 차붐에 대해 물어보니까 듣보잡이던데요??-_- 외국나가보세요 차붐에대해 거의 몰라요 첼시의 드록바와 다를게 없죠 드록바도 몇십년 지나면 잊혀지고 또 그 시대에 잘하는 선수가 사랑 받고있겠죠

  • ㅇㄹㄹ 2010.06.21 19:55

    아시발 빨리 다른거올려줘

  • Favicon of http://damunjeil.egloos.com BlogIcon 다문제일 2010.06.21 23:38

    "(차범근은)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는 아니에요. 윙 포워드라고 하는게 맞겠죠. 유럽엔 (차범근보다) 골을 많이 넣는 공격수가 많았죠. (차범근은) 골게터로서 득점을 많이 하기보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많이 만들었어요."

    누가 한 말일까 차빠?

    http://www.yangkogsports.com/bbs/view.php?id=freeboard&no=526

    같은 입으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고도 하고 스트라이커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했다고도 하는군. 국가대표 감독까지 지낸 사람 머릿속에 전술 개념이 자리잡지 않아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너의 축구 포지션에 대한 관념부터 재정립해야 할 것 같지 않냐? ㅋㅋㅋ

    메이저가 어지간히 되고 싶긴 하나 보다. 꼴에 논쟁은 풋.

  • 근데 2010.06.22 10:21

    백날 토론해봐야 폄하나 찬양 짓 밖에 안되는 것을 잉여들은 죽자살자 달려든다

  • dd 2010.06.22 17:02

    유인영 화보 떴던데 싸그리 다 정리해서 올려주셈.

  • 남박사 2010.06.22 23:36

    내가 고자라니

  • 그대신 2010.06.30 01:36

    그대신 차붐은 독일 시절 pk한번도 안찼잖아요 인정할건인정합시다.

    • 러어ㅣㅏㄹ 2012.08.19 16:47

      피케이는 인정할만 하네요....

  • 내위에 2010.11.30 19:48

    윗님은 피지컬(몸쌈,발)과 테크닉(개인기,결정력)으로 만든골만 골취급하는 초딩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으신듯.
    위치선정이 좋아서 미드필더들이 공 쉽게쉽게 넘겨주게 만드는것도 능력이고, 전담키커도 능력임.
    피케이를 한번도 안찼다고 좋아하는건 말이 안됨.

  • ㅋㅋㅋ 2011.03.13 20:30

    넷상에서 차범근 거품론의 근거들과 이에 대한 반박
    ===================================================

    근거1. 당시 분데스리가는 3류리그였다.

    반박:


    ㄱ. 유럽에서 제일 권위있는 수상단체인 유럽골든볼(발롱도르) 수상자 명단: 칼 하인츠 루메니게(80년,81년) 케빈 키건(78,79년) 알란 시몬센(77년) 프란츠베켄바워(76년) --차붐이 분데스리가 진출한 처음3년간 (79~81년까지) 분데스리가 선수들이 발롱도르 휩씀..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키건과 루메니게가 발롱도르를 수상할때 차붐은 리그 최고의 용병대우받음. (지단이 발롱도르 수상할때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상을 수상한 피구에 비유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ㄴ. 당시 독일축구는 82 86 90년 월드컵 3회연속으로 결승전에 올라갈정도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엇고 선수층도 무척 두터웠다...이 선수들이 모두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볼프강 오베라츠, 라이너 본호프, 베르티 포그츠, 유프 하인케스, 알란 시몬센, 델 하이에, 칼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 우리 회네스, 제프 마이어, 게르트 뮬러, 한지 뮬러, 디이터 뮬러, 부르그스 뮬러, 로타르 마테우스,
    케빈 키건, 만프레드 칼츠, 헬베르트 후루베시, 페터 마가트, 제프 융한스,
    루디거 아브람직, 클라우스 피셔, 휠첸바인, 그라보브스키, 나흐트바이,
    칼하인츠 푀르스트, 베른트 슈스터, 피에르 리트발스키, 토니 우드콕.루디 펠러, 위르겐 클린스만, 브레메,피에르 리트바르스키.위르겐 콜러,브루노 페차이.....등등..

    물론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 세리아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스타선수들을 싹쓸이하면서 세계최고의 리그로 부상하게된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그이후에도 적어도 차붐이 은퇴하던 80년대 후반까지는 세리아와 함께 탑리그중의 하나의 위치는 지켰다고 보는게 옳다.

    분데스리가가 현재처럼 세계 2류리그로 떨어진것은 9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다. 차붐이 뛰던 시절에는 세계최고의 리그 혹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세리아와 함께 세계 정상급리그중의 하나의 위상은 지켰다.





    근거2. 차범근이 뛰엇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은 허접팀이었다.

    반박: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이 정규리그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는 팀에는 맞다. 기껏해야 중위권 될까말까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축구가 현재처럼 고도의 상업화가 되기 전이어서 선수들의 연봉수준이 큰 차이가 안 났고 따라서 현재처럼 뛰어난 선수라면 모두 빅클럽에 뛰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빅클럽에 가서 우승을 노리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평범한 팀에서 에이스역할을 하면서 팀을 이끄는 선수도 꽤 있었다...하얀 펠레라 불리던 지코도 우디네세에서 선수생활을 보냈고 좀 더 최근의 선수로는 바티스투타나 토티같은 선수들도 있다. 94월드컵 당시 브라질 국대주장 둥가는 슈투트가르트소속이었다. 차붐시절의 슈투트가르트도 아니고 2류리그로 전락한 시기의 슈투트가르트..

    차붐은 강팀에 가서 정규리그 우승을 하기보다는 중위권팀에서 자기가 에이스로 팀을 이끄는 길을 택했다. 각 선수간의 연봉차이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요즘같으면 연봉이 빅클럽과 중위권클럽과는 몇배나 차이나기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요즘 박지성에서 연봉 왕창깍고 헐시티같은팀에 가서 에이스 하라고 하면 할까?)


    그리고 차붐또한 빅클럽에 갈뻔한 기회가 두어번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기전 시점쯤에... 함부르크 sv와 ac밀란 (두팀다 당시 분데스리가 세리아 우승을 노리던 강팀임..밀란은 지금도 세계적인 강팀이다)에서 영입의사를 타진했지만 함부르크는 노장인 차붐보다는 유망주 두명을 영입하는걸로 선회하고 ac밀란은 수년전 승부조작파동을 일으킨 팀이라서 차붐이 거부했다는 설..혹은 세리아 용병자격에 유럽 5년이상 거주자격이 필요한데 차붐이 이게 안되서..이 두가지 설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클럽인 인터밀란에서 제의했으면 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위내용의 출처는 함부르크 sv팀매니저인 귄터네쳐의 회고록 & 후추 명전 차붐 인터뷰#



    근거 3. 차범근은 정규리그 우승도 못했는데 어떻게 레전드냐?

    반박:

    정규리그 우승이야 당연히 못했디...팀전력자체가 중위권도 간당간당한 팀들이었는데 어떻게 정규리그 우승을 할수 있을까? 마라도나라면 모를까...마라도나는 이걸 해냈기 때문에 세계축구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고 있다..(그리고 나폴리가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보다는 더 강팀이었다)


    근거 4. 차범근이 2회 우승한 유에파컵은 3류대회다.

    반박:

    당시 유에파컵은 현재처럼 허접한 대회가 아니었다. 그당시 유에파컵은 정규리그 우승을 못한 강팀들이 다 나오는 대회였고 챔피언스리그는 리그 1위팀만 나갔다. (현재는 빅리그 1~4위팀까지 나감) 다시말해서 당시같은 제도라면 프리미어 우승팀인 맨유만 챔스 나가고 나머지 첼시 아스날 리버풀같은 팀들은 다 유에파컵 나갔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리그 1위팀만 나가서 경기수도 적고 수준낮은 마이너리그 우승팀들도 나오는 챔스보다 경기수도 많고 빅리그 강팀들도 많이 나오는 유에파컵의 우승난이도가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았다.

    유에파컵이 허접대회가 된것은 90년대들어서 챔피언스리그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강팀들이 챔스에 많이 나감에 따라 규모가 점점 축소되었고 2000년대 들어와서 챔스 16강 탈락팀이 유에파컵 토너먼트중간에 합류하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허접대회로 전락했다. (당시 권위는 유에파컵>챔스 이딴 주장이 아니라 유에파컵이 챔스 못지않은 독자적인 권위를 가진 대회였다는 거다. 마라도나가 나폴리 레전드로 꼽히는 2대이유가 스쿠데토획득과 유에파컵 우승이다.)


    근거 5. 차범근은 10년간 뛰면서 겨우 98골밖에 못넣었고 제일 잘한게 17골로 득점 4위밖에 못했는데 무슨 분데스리가 최고선수냐?그리고 차범근이 윙포라는것은 거짓말이고 실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다.

    반박:


    자꾸 차범근 포지션과 득점수 가지고 까는 사람들이 있어서 제대로 설명한다.

    일단 차범근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가 맞다. 소속팀에서 주로 투톱 혹은 스리톱으로 많이 뛰었다고 한다. (선수생활 말년의 2년정도는 공미) 하지만 차범근이 스코어러타입이었냐? 그건 아니었다.

    투톱의 쉐도우 혹은 스리톱의 우측공격수 정도의 위치에서 뛰면서(당시엔 쉐도우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주로 사이드돌파와 공간침투 및 크로스로 득점찬스를 많이 만들어내면서 득점도 동시에 꽤 하던 스타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요즘으로 치면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중간형 정도 되려나?

    차붐이 엄청난 스피드와 많은 활동량 강한 몸싸움 뛰어난 기술 및 전술이해도를 다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그런 복잡한 롤이 맡겨졌던 거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적 약팀의 에이스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붐이 뛰던 팀들이 우승을 노리는 명문팀이 아니라 리그 중하위권을 맴도는 팀들이었기 때문에 차붐에게는 항상 상대의 집중마크가 들어왔고 그런 상황에서 상대적인 강팀들을 상대로 플레이하면서 단 한개의 페널티킥도 차지 않으며 필드골로만 98골을 넣었다. 절대 못한게 아니다.

    차붐의 득점수가 적은것 가지고 자격지심을 갖고 억지로 윙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그럴필요가 없다. 그가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수준의 돌파형선수였다는 증언들이 명백히 남아있으니까..

    증언1/프랑크푸르트시절 차붐의 팀동료였던 로테르만 피파 심판강사 "빈공간으로 볼을 뻥 차주기만하면 4~5명을 한번에 제쳤다" "차붐의 기록또한 훌륭하지만 그의 진가는 기록으로 표현할수없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았다"...#출처:kfa 로테르만 심판강사 인터뷰#

    증언2/당시 분데스리가 최고 공격수중에 하나였고 득점왕도 여러번 차지한 루디펠러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선수, 못하는게 없는 선수"... # 출처: 독일의 코레아노 차붐 다큐#
    (골수로 치면 차붐보다 2배가까운 골을 넣었고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여러번 차지한 루디펠러가 뭣때문에 골도 몇골 못넣은 하수인 차붐에게 그런 칭찬을 했을까??다른 장점이 없으면 설명할수가 없는 부분이다.)

    증언3/거스 히딩크 "차붐이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할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분데스리가에 차붐을 막을만큼 빠른 수비수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히딩크 자서전 마이웨이#

    증언4/ 차붐의 부인 오은미 여사 (놀리는 어투로) "루메니게나 루디 펠러같은 사람들이 골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줄 알아? 당신이 10단위면 그 사람들은 20단위야" "당신은 워낙 골넣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출처:후추명전 인터뷰중#

    증언5/차붐과 동시대에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뛰었던 앤디에글리 전 부산감독

    내가 한국이란 나라를 알게 된 것은 차붐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선수'였다.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대단했던 선수였다는 것은 한국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차붐 전에는 잉글랜드 출신의 케빈 키건이 최고의 외국인선수였고, 그 뒤에는 가나대표였던 토니 예보아가 있었다. 차범근 감독이 현재 K리그 수원 감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출처: 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LCT=0&AID=166089&PG=6


    증언6/차붐 인터뷰중 "나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는 아니에요. 윙 포워드라고 하는게 맞겠죠. 유럽엔 나보다 골을 많이 넣는 공격수가 많았죠. 나는 골게터로서 득점을 많이 하기보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많이 만들었어요.”

    http://www.yangkogsports.com/bbs/view.php?id=freeboard&no=526




    증언7/ 80년도 유에파컵 결승전 차붐 플레이만 모아놓은 동영상..http://www.mgoon.com/view.htm?id=4366903

    43초경에 잉글랜드 해설자가 영어로 해설하면서 차붐에게 "독일에서 최고의 외국인선수(no1 foreign player in germany)"라고 극찬한다.


    양놈들이 아무리 립서비스가 좋다 하더라도 그정도라는 칭찬은 절대 그냥해주는게 아니다.
    그 선수의 기량이 아무도 의문을 달지 못할만큼 압도적이지 않고서야 그런 칭찬을 해줄수는 없는거다.

    차붐의 실력을 의심하는 지들이 생각하는것처럼 동양의 이름없는 나라에서 용병이 와서 꽤 준수하게 잘 하니까 기특해서 립서비스로 띄워주는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그건 요즘 박지성 정도 수준일때나 해당된다.)

    그리고 축구는 야구처럼 확실한 포지션이 나뉘어져 있는것도 아니고 골이나 어시스트같은 스탯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게임이다. 요즘 뜨는 호날두처럼 윙포지만 스트라이커보다 더한 득점기계같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도 있고 드록바처럼 스트라이커지만 세트피스수비시 센터백 못지않은 수비력을 보여주는 선수도 있다. 히딩크가 말햇던것처럼 축구에서 포지션은 숫자놀음일 다름이다..

    차붐은 스트라이커였지만 분데스리가에서 아무도 비할데없는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엄청난 돌파력을 지녔엇고 이러한 돌파력을 바탕으로 어시스트도 많이하고 그러면서 득점도 노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겔스도프에게 등뒤에서 백태클 얻어맞고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스트라이커라고 해서 모두 득점기계만 있는게 아니다. 득점 못지않게 돌파와 어시도 많이 담당하고 그러면서 페널티킥도 많이 얻어내었지만 페널티킥 공포증이 있어서 페널티킥도 단 한번도 차지 않았으니 득점수가 적은것은 어쩌면 당연한걸로 봐도 무방하다.

    좀더 구체적인 증거를 대자면 차붐이 최고의 득점수를 기록한 85/86시즌 17골로 득점4위를 기록했을시절보다 데뷔시즌은 79/80시즌 12골로 득점12위를 기록했던시절이 전성기로 평가되고 있다. 위의 양키해설자가 말한 "no1 foreign player in germany"라는 평가도 이 시기에 나온 말이다. 왜 17골을 넣었을때보다 12골을 넣었을때가 더 높이 평가될까?

    그이유는 데뷔시즌 무렵의 차붐이 훨씬 나이가 젊고 스피드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돌파력 역시 훨씬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그 이후 겔스도프의 백태클로 척추골절을 당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차붐의 돌파력이 떨어지고 좀더 타겟에 가까운 스타일로 변했기 때문에 17골을 넣어도 데뷔시즌과 같은 언터쳐블한 평가는 나오지 않는거다.


    근거6. 차붐은 월드컵에서 제대로 활약도 못했는데 어떻게 레전드냐?


    반박:


    ㄱ.차붐은 당시 심각한 부상중이었다.

    "아킬레스건이 늘어난줄도 모르고 발목 힘줄이 닳아 납작해질때까지 뛰어서 의사가 뜨거운 바늘로 발목뼈에 구멍을 뚫고 꿰메었다" #출처:차범근 자서전 1권 슈팅메세지#

    "발목 힘줄이 안 좋아 붕대를 감고 월드컵에서 뛰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35121&


    ㄴ. 혼자서 약팀을 강팀에 승리하게 만드는건 개인의 능력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과 같은조의 팀들인 아르헨티나는 그대회 우승국이었고 이탈리아는 전대회 우승국이었다. 다른 한국공격수들이 비교적 선전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한국 유일의 월드클래스선수였던 차붐이 상대 수비수 1~2명을 항상 달고다니면서 공간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의 상황을 종합해볼때 차붐은 심각한 부상에도 수술까지 미루며 월드컵 출전을 강행했지만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라는 세계최강수준의 팀들에 밀려 한국을 16강에 진출시키는데는 실패했다. 잘했다고 볼수는 없지만 이 때문에 비난받을만한상황은 아니다.

    이게 비난받을거리가 된다면 조국을 월드컵 본선에도 한번도 올리지못한 조지 웨아나 라이언 긱스 야리 리트마넨 등은 혀깨물고 죽어야한다.


    근거 7. 차범근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선수다?


    반박: 천만에...오히려 언론에 의해 까내려진 선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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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dontgo21/12000278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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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필자는 지난 8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문 시 차범근의 손 지갑 안에 아직까지
    도 고이 간직되고 있던 한 통의 편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얼마 전 '월드컵 조직
    위 홈페이지 사건'으로 부당하게 옷을 벗은 최창신 전 사무총장(당시 서울 신문 기자)
    이 81년 차범근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월드베스트
    올스타전'에 출전을 앞두고 있던 차범근은 P모 씨를 비롯한 국내 기자단 4명의 '초대
    치 않은' 독일 방문을 받게 된다. PSV 아인트호벤에서 뛰던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의
    초청으로 유럽에 도착한 기자단은 바르셀로나 올스타 경기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차범
    근에게 자신들에게 스페인 행 비행기 표와 체제비를 요구한다. 아주 좋게 얘기하자
    면 "차선수, 그래도 당신이 국민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와서 이렇게 컸는데 고국에
    있는 그들에게 바르셀로나 올스타 전 경기 소식을 열려 주고 싶으니 가능하면 우리
    취재비랑 체제비 좀 대 주쇼…" 이런 식의 요구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이,
    차범근이… 니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국민스타가 되고 떼돈을 벌게 됐는데 이젠 우리
    한테도 좀 협조해야지.." 당시 기자단의 정확한 접근 방식은 후추인의 상상에 맡긴다.
    이에 대한 차범근의 반응은 단호했다. "당신들 비행기 표랑 체제비 끊어줄 정도로 돈
    을 벌지도 못 했지만 설사 벌었다고 해도 그렇게는 돈을 쓸 수가 없다." 차범근의 이
    한 마디로 그에 대한 국내 언론의 '융단 폭격'은 시작된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차
    범근의 말을 들어본다. "독일에서 멀쩡히 게임을 뛰고 있는데 경기에도 안 나갔고 벤
    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감독과 불화', '미국 코스모스로 간다', '홍
    콩으로 간다…' 뭐, 이런 악성 루머나 퍼뜨리고 말이야." 당시 차범근에 대한 공격
    은 독일 신문에서도 한몫을 했다. 81 시즌 골이 터지지 않자 '고연봉 선수'에 대한
    시기로 인해 동료 선수 페차이와의 갈등 등, 한마디로 차범근이 경험했던 '최악의
    나날들' 이었다. 차범근은 회상한다.


    "내가 죽는 수 밖에 없더라고… 내가 죽어줘야
    해결이 되겠더라고… 마누라는 정신병원에 갈 뻔 하고, 근데 내가 죽질 않으니… 첫
    골이 터지고 나니까 독일 신문은 그런 공격이 서서히 사라지고 차차 회복이 되었지만,
    금방 죽길 원했던 국내 언론은 내가 3년, 4년까지 살아 남으니까 그때서야 서서히 수
    그러 들더라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당시 서독을 방문해서 내 생활을 보고 서
    독 팬들의 반응을 두 눈으로 보고 갔던 최창신 기자는 국내 언론에서 별의 별 얘기를
    다 해대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해서 그 편지를 보낸 거고 얼마 전(98년)
    보다도 훨씬 더 언론의 공격이 심했던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창신이 형의) 그 편지
    한 통이 정말 많은 힘이 되었지… 그 무렵 교통부 장관 하시던 정부 고위 관계자가
    독일에 와서 내 생활을 다 보고 경기도 보고 가셨는데 그 뒤로 청와대에 계시는 분
    이 신문사 데스크들을 불러서 '내가 다 보고 왔는데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되느
    냐?'라고 질타를 해서 신문사 데스크들도 다 바뀌고 그랬다고 그러더라고…" 필자가
    직접 본 최창신 전 사무총장의 낡고 낡은 편지에는 그런 말이 쓰여져 있었다. "자네
    에 대해 그 어떤 소문과 말이 나돌아도 난 자네를 믿네…" 그 한마디의 격려는 이날
    까지도 차범근의 지갑 속에, 아니 그의 가슴 속에 묻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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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선수가 유럽에 가서 돈 잘번다고 하니 샘이 났던지 삥 뜯으려고 수작부리다 거절당하자 악의적인 기사나 쓰던 양아치 기자들이 차붐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써줬겠는가? 이 기자들 중에서 훗날 경향신문사 사장도 나온걸 보면 언론계에서의 입김이 결코 만만치 않았을걸로 짐작되는데(당시 유럽에 특파원으로 갈 정도면 각 언론사에서 입지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함) 이런 분위기하에서 언론에 의해 부풀려졌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다.

    개인적으로 당시 국내언론에 의해 전해진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는 차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더이상 까내릴수가 없으니까 전해진정보가 알량한 '월드스타'가 아닐까?

    그런데 알만한 사람은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월드스타'가 무척 많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이러한 '월드스타'들 사이에 함께 묻혀서 덩달아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무척 높은 사람이 차붐이다.







    물론 위의 본문 글쓴이가 지적한 내용은 대한 틀린 내용이 맞다. 차붐 까는 근거중에 유일하게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부분이 이부분이다.

    하지만 저 자료가 처음으로 넷상에 유포된 시점이 언제인지 보면 2000년경이었다. 이당시 차붐이 월드컵 참패와 월간조선 인터뷰파문으로 국내에서 거의 매장당한 분위기였고 이런 상황에서 차붐의 선수로써의 실력과 업적까지 덩달아 과소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젊은이들의 옛날 축구에 대한 무지 또한 한몫함)

    이런 상황에서 이걸 안타까워 저 문서를 어느팬이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는데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서 써서 그런지 몰라도 잘못된 내용이 너무 많았다는거다. 도서관에서 자료라도 제대로 찾아보고 정확하게 썻으면 좋았겠지만 어쨋든 그 문서작성자가 처음에 의도한것은 성공했고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사실 나도 그 문서를 보고 차붐팬이 된 사람중의 하나다.) 차빠들이 차붐의 업적과 실력을 부풀리려고 날조하기 위해서 만든게 아니라 우연히 실수로 만들어진거란 말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축구문화와 기록보존 능력이 부실하다는 소리밖에 안된다. 아무리 양보해서 말하더라도 차붐팬들의 잘못이지 차붐의 잘못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다른거 다 닥치고 이 동영상이나 봐라.



    http://www.mgoon.com/view.htm?id=4397402


    새로 만들어진 차붐스페셜이다. 도깨비팀에서 만든게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말로만 다 때우고 그조차도 상당수가 틀린게 많았는데(물론 그 원인은 2000년경에 처음 잘못된 정보를 유포한 사람때문이다) 이건 순수한 플레이만 모아놓은 자료다.17분정도 되기 때문에 분량도 상당히 많다.

    순수하게 선수로써의 플레이만 보고 판단해라. 이게 어디 평범한 선수가 할수 있는 플레이로 보이는가?

    무턱대고 날조까지 해서 찬양하는 애들도 문제지만 무턱대고 까내리는 애들은 더 문제다.

    • 러어ㅣㅏㄹ 2012.08.19 17:06

      너무 길어서 다 안읽엇어요.... 물론 제말이 설득력이 없을지는 모르나.... 발롱 수상햇다고 그리그가 최고라고 보는건 좀 그럴지도요.... 물론 발롱수상한건 대단하지요....그리고 80년대 독일 축구가 최고라고 봐도 무방한듯 합니다.... 그리고 독일 자국 선수야 당연히 분데스에서 대부분 뛰겟지요.... 오베라트,포그츠,시몬센,루메니게,브라이트너,마이어,게르트뮬러,마테우스,키건,칼츠,슈스터,클린스만,브레메,콜러등은 대단한 선수들이네요... 근데 여기서 자국 선수들을 빼면 시몬센,키건 .. 세계적 용병은 단 두명정도이네요... 이런데 어떻게 분데스가 최고인가요?... 지금 3대리그 용병수준과는 한참 떨어지는데요.... 당시는 특정리그로 세계적인 선수들이 몰리는 현상이 지금보다 덜햇죠... 그러니 질적으로 따지면 분데스는 지금의 이피엘,라리가,세리아에 못미친다고 볼수 잇을것 같은데요... 위의 선수들 빼고는 그닥 유명하지도 않은 선수들 같은데.... 피구에 비교하신게 지나친건 아니어도 약간 억측같은 느낌이 저는 드는데여.... 그리고 차붐 말고도 시몬센,키건,파프같은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것 같은데 굳이 차범근이 최고의 용병이라고 볼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80년대 중반부터는 세리아가 압도적이라 볼수 잇고 분데스리가가 2위리그 일수가 잇겟지만 다시 말해서 자국 선수가 대부분인 분데스가 세리아에 대적할만한 수준은 아닌듯... 지금의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차이보다 당시 세리아 분데스차이가 더 클것 같네요....

  • 으음 2011.10.09 21:29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고 씁니다.
    우선... 비판하고 싶으시면 06년 독일월드컵때 만들어진 다큐라도 보세요.
    다큐라고 해서 과장이 안되었다고는 장담 못하지만...
    당시 선수들 또는 예전이나 현재에 독일 축구계에 유명한 사람들 나와서 차범근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그 다큐에 수석고문인가 수석코치로 나오는 사람은 예전 독일 국대 감독입니다.
    독일 국대경기때 차범근이 독일국대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를 한걸 듣고 그 국대 감독이 차범근을 비난했다가
    독일 여론에 뭇매를 맞고 차범근에게 사과하고 같이 만나서 인터뷰한게 한국에서 방송된적이 있습니다.
    더 재밌는건 현재 독일 국대 감독이 차범근 선수시절의 백업선수)

    야구 좋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야구 좋아하시는분들이 축구선수에 대해 이야기할때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가 스탯에 대한 지나친 의존입니다.
    몇골 몇어시...
    마라도나 펠레 같은 전설적인 선수나 현재 진행형인 메시,호날두 같은 최고의 스타는
    스탯이나 그 이외의 것들을 모두 충족시키지만 그 외의 선수는 그것만으로는 평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스탯도 그리 딸린편이 아니었습니다.
    차범근 선수가 외국인 용병중에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였던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300골 넣은 선수가 나오긴 했지만...

    당시 분데스리가는 최고급이었고 외국인 용병 제한이 1명이었는데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차범근을 선택했습니다.
    예전에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했을때 외국에서 본선 진출한 팀들 예상순위를 매겼는데 한국을 꼴찌로 놨다가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 차범근이 본선부터는 참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몇단계 순위를 올려놨다고 합니다.
    물론 꼴찌에서 몇단계 올린 정도지만.. 그만큼 높게 평가했다는거죠.
    차범근 덕분에 허정무도 진출했다고 하니...

    그리고 위에분 독일 유학 갔다오면서 듣보라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용병 선수들 다 외우고 다니시나요?
    오래된 일이고 분데슬리가는 K리그보다 유명한 선수가 더 많으니 기억 못할수도 있죠.
    예전에 차범근이 독일 경기장 방문했는데 경기장내 아나운서가 차범근 왔다고 소개해줘서
    관중석에 있다가 일어서서 인사한 일도 있습니다.
    기사와 사진 모두 있습니다.
    수원우승시키고 레버쿠젠 갔는데 레전드 대접도 해줬다고 합니다.

    아... 일일히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알고 까고 싶으시면 찾아보시고 관심 없으시면
    냅두세요.

    • 러어ㅣㅏㄹ 2012.08.19 17:13

      유학생 한말 같은건 좀 그렇네요... 부정확한 자료 같은데..차붐이 대단하긴하나 약간 부풀려진것 같네요....

  • ㅇㅇ 2012.02.08 22:22

    차범근 본인이 나는 윙포워드가 아니라 센터포워드였다 이랬는데

    날조들키니까 사실은~ 어쩌구저쩌구~ㅋㅋㅋㅋ

    차범근은 있는그대로도 충분히 대단한선수인데 지들이 부풀려놓고 사실을 말하니까

    너 야빠니 쪽바리니 별에별 욕이 다 쏟아져 나오는구나

    그리고 글쓴이가 차범근 깠냐? 충분히 차범근의 업적을 인정했구만ㅋㅋ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치면서 잘난척해도 결국 광신도빠돌이들은 어쩔수없지

  • dㅇㅇ 2012.11.04 20:05

    이 병신은 허구헌날 차범근을 까네. 도대체 뭔 원한이 맺혀서 그러냐? 이 병신아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홈피에 들어가서 보면 차범근은 윙도워드, 또는 윙어로 되어 있다. 이 등신아....본인 얘기로는 스트라이커로도 뛴 적도 있고. 으휴...대갈빡을 콱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