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전까지는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에 대한 논란이 없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넷상에 갑자기  '차범근 다시보기 붐'이 불어닥치더니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 활약상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더군요.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용병으로 활약했고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현지에서는 훨씬 더 대단한 평가를 받는 선수라는 것이 2002년 월드컵 전후에 쏟아진 차범근 재평가글들의 주장이었습니다. 현재로치면 지단과 피구급의 선수였다고 했죠.  

2002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인터넷의 차붐 찬양은 꺽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2003년~2005년 즈음에는 세브첸코나 앙리등의 이름이 거론되더니, 요즘에는 호날두와 드록바,카카,메시등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교되는 선수들의 이름은 바뀌고 있지만 일관된 것은 차범근은 단순히 뛰어난 용병이 아니라 리그를 지배하고 리그를 대표하는 탑클래스 선수였다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 세계 제일의 축구 선수를 배출했다니 한국인으로서 가슴 설레이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보면 상당수가 과대포장이거나 허구여서 신뢰감이 떨어지더군요.

예를들면 80년 UEFA컵 결승에서 마테우스가 차범근의 전담맨이었고 경기후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닙니다. 당시 마테우스는 미드필더로 출전해 골까지 터트렸습니다. 경기하면서 몇번 마주치기는 했겠지만 미드필더인 마테우스가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던 차범근을 전담 마크할 일은 없었습니다.

피파에서 선정한 20세기 축구 선수에 차범근이 60위로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차범근=역대 세계 축구 60위 선수'로 설명하려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알야야 할 것이 그 랭킹은 대륙 안배가 적용되었다는 겁니다. 공동 60위를 차지한 차범근 바로 밑인 62위에 선정된 선수는 알제리의 Lakhdar Belloumi와 Rabah Madjer입니다. 64위는 Abdullah Majed라고 사우디 아라비아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에서는 차범근을 세계 최고 선수라는 찬양이 그칠줄 모르는데 선수 시절의 차범근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89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차범근이 스포츠 서울과 인터뷰한 기사가 있습니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의 차범근의 위상을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겁니다.

-선수 생활을 결산하면서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분데스리가 베스트11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한단계 루메니게 브라이트너등이 서있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욱이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정열과 패기였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던 곳에 나는 적지않은 사람들과의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스포츠 서울1989년 4/19)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루메니게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3회 차지하고 발롱도흐를 두차례나 휩쓴 독일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 폴 브라이트너는 70년대 유로피언컵 우승과 리그 5회 우승에 빛나는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끈 간판 스타입니다.

차범근은 이 선수들의 레벨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한탄했습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자신이 말처럼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와 같이 리그를 상징했던 슈퍼 스타는 아니었습니다. 요즘의 호날두 카카 메시와 같은 S급 스타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이없죠.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만해도 가슴 벅차 오르던 시대에 유럽에 가서 그만했으면 잘한겁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가장 성공한 축구 선수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납니다. 말도 안되는 환타지 소설은 그만 좀 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