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수 차범근'을 본 세대는 아니다. 차범근이 라이트윙으로 뛰었다고 들어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2 월드컵 3개월 전쯤 신문선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는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한일 청소년 축구의 중계를 맡은 신문선은 경기 도중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는 최정민 - 이회택 - 최순호 - 황선홍 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캐스터인 송재익이 차범근의 이름을 데려하자 신문선은 "차범근은 윙플레이어"라면서 차범근을 역대 최고 스트라이커 명단에서 제외시켜버렸다.

신문선의 발언은 축구팬들을 크게 분개시켰다.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을 라이브로 시청한 올드 축구팬들은 "차범근이 국대에서는 라이트윙으로 활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분데스리가 시절에는 센터포드로 활약했다.이를 모를리 없는 신문선 위원이 의도적으로 차범근을 깍아내리려고 한다"며 비난했다.  2002년 3월 '후추'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처음으로 차범근이 독일에서는 센터포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추는 2000년대 초반 '명예의 전당 차범근편'이라는 글을 통해 차범근 다시보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스포츠 사이트다. '차범근 명예의 전당편'은 후추의 필진들이 조사를 통해 작성한 원고를 차범근 본인에게 직접 확인까지 받았다. 그 글에서도 분데스리가 시절 차범근이 센터포드로 뛰었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저 빨간줄과 첨삭을 차범근이 손수 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87~88시즌부터 차범근은 센타포드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며 25게임에 출장 4골을 기록한다." 대목이 있는데 차범근의 수정 없이 그대로 나왔길래 올드팬들의 증언도 있고해서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센터포드였다는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차범근이 센터포드였다고 말하면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넷상에는 틈만나면 차범근과 현역 축구 스타들을 비교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차범근이 요즘으로치면 세계 축구계에서 어느 레벨에 해당하는 선수냐는 것인데, 소위 '차빠'들이 차범근이 센터포드였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하다. 차범근의 득점력 때문이다.



79-80  12골   Karl-Heinz Rummenigge (Bayern M?chen)  26골  

80-81   8골   Karl-Heinz Rummenigge (Bayern M?chen)  29골  

81-82  11골   Horst Hrubesch (Hamburger SV)               27골          

82-83  15골   Rudi V?ler (Werder Bremen)                      23골         

83-84  12골   Karl-Heinz Rummenigge (Bayern M?chen) 26골  

84-85  10골   Klaus Allofs (1. FC K?n)                           26골

85-86  17골   Stefan Kuntz (VfL Bochum)                      22골      

86-87   6골   Uwe Rahn (Borussia M?chengladbach)      24골     



차범근이 말년에 미드필더로 전환하기 전 8시즌의 득점 기록이다. 1위와의 차이가 현격하다. 차범근을 세계적인 톱레벨의 선수들과 비교하는 차빠들로서는 허전한 득점력이 걸린다. 그래서 차범근의 포지션을 윙포워드로 주장하는 것이다. 센터포드라면 평범한 기록이지만 윙포워드라고 하면 제법 그럴듯 하기 때문이다. 차범근을 루니와 드록바 같은 선수들과도 동급으로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아무리 차범근이 윙포워드라고 우겨도 분데스리가에서는 차범근을 센터포드로 보고 있다.



1. Gerd Muller(FC Bayern. 60,3%)

2. Uwe Seeler(Hamburg SV. 15,9%)

3. Klaus Fischer (Schalke 04. 5,1%)

4. Ulf Kirsten (Leverkusen. 4,9%)

5. Stephane Chapuisat(Dortmund. 3,3%)

6. Giovane Elber (FC Bayern. 2,7%)

7. Horst Hrubesch (Hamburg SV. 1,8%)

8. Klaus Allofs (Koln. 1,7%)

9. Bum-Kun Cha (Leverkusen.1,6%) 

10. Karl Heinz Riedle (Dortmund.1,4%)

11. Dieter Muller(Koln. 1,3%)


차빠들이 웃으면서 올리는 키커지의 역대 분데스리가 공격수 랭킹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차범근이 센터포드임을 증명하는 자료라는 것을 차빠들은 알까?

저 자료를 자세히 보면 뭔가 허전하다. 80년대 독일축구의 전설인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루디 펠러가 없다. 루메니게와 펠러는 해외에서 오래 활동해 분데스리가 경력이 미흡해서 빠졌다고 생각할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분데스리가 경력만 루메니게는 310경기에서 162골, 펠러는 232경기  132골이다. 역대 공격수 랭킹에서 최상위권에 있어야 하는 선수들로 절대 빠져서는 안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이렇다.  키커지에서는 2003년에 분데스리가 40주년을 기념해 인터넷 설문을 통해 역대 베스트 11을 선정했다. 차범근이 올라가 있는 랭킹은 축구의 11개 포지션중 중앙공격수 즉 센터포드였다고 한다. 루메니게와 펠러는? 중앙공격수가 아닌 좌우윙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제 좀 납득이 가지 않는가.

분데스리가에서도 차범근을 센터포드라고 보고 있다. 이런 근거가 있는데 차범근을 보지도 못한 놈들이 윙포워드라고 우겨봤자 무슨 소용이냐.

차범근도 현역 시절 자기입으로 센터포드라고 했다. 차범근이 일본의 오쿠데라와 분데스리가에서 맞대결을 벌였을 당시의 기사다.




1979.11.26 동아일보



-게임중 오쿠데라와 몇번 맞섰나.

전반 한번 맞섰다. 나는 이날 센터포워드로 오쿠데라는 링커로 뛰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차범근은 센터포드가 아니었다는 말은 하지 말자. 포지션 변경시켜서 '차범근은 루니라능.드록바라능 하악하악'해도 소용없다.  어차피 차범근은 올해의 선수 랭킹에서 10위안에도 한번 들지 못한 선수였다는 거 다 남아있다. 헛심쓰지 말자.


















2000년대 전까지는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에 대한 논란이 없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넷상에 갑자기  '차범근 다시보기 붐'이 불어닥치더니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 활약상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더군요.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용병으로 활약했고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현지에서는 훨씬 더 대단한 평가를 받는 선수라는 것이 2002년 월드컵 전후에 쏟아진 차범근 재평가글들의 주장이었습니다. 현재로치면 지단과 피구급의 선수였다고 했죠.  

2002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인터넷의 차붐 찬양은 꺽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2003년~2005년 즈음에는 세브첸코나 앙리등의 이름이 거론되더니, 요즘에는 호날두와 드록바,카카,메시등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교되는 선수들의 이름은 바뀌고 있지만 일관된 것은 차범근은 단순히 뛰어난 용병이 아니라 리그를 지배하고 리그를 대표하는 탑클래스 선수였다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 세계 제일의 축구 선수를 배출했다니 한국인으로서 가슴 설레이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보면 상당수가 과대포장이거나 허구여서 신뢰감이 떨어지더군요.

예를들면 80년 UEFA컵 결승에서 마테우스가 차범근의 전담맨이었고 경기후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닙니다. 당시 마테우스는 미드필더로 출전해 골까지 터트렸습니다. 경기하면서 몇번 마주치기는 했겠지만 미드필더인 마테우스가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던 차범근을 전담 마크할 일은 없었습니다.

피파에서 선정한 20세기 축구 선수에 차범근이 60위로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차범근=역대 세계 축구 60위 선수'로 설명하려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알야야 할 것이 그 랭킹은 대륙 안배가 적용되었다는 겁니다. 공동 60위를 차지한 차범근 바로 밑인 62위에 선정된 선수는 알제리의 Lakhdar Belloumi와 Rabah Madjer입니다. 64위는 Abdullah Majed라고 사우디 아라비아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에서는 차범근을 세계 최고 선수라는 찬양이 그칠줄 모르는데 선수 시절의 차범근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89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차범근이 스포츠 서울과 인터뷰한 기사가 있습니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의 차범근의 위상을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겁니다.

-선수 생활을 결산하면서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분데스리가 베스트11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한단계 루메니게 브라이트너등이 서있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욱이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정열과 패기였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던 곳에 나는 적지않은 사람들과의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스포츠 서울1989년 4/19)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루메니게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3회 차지하고 발롱도흐를 두차례나 휩쓴 독일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 폴 브라이트너는 70년대 유로피언컵 우승과 리그 5회 우승에 빛나는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끈 간판 스타입니다.

차범근은 이 선수들의 레벨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한탄했습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자신이 말처럼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와 같이 리그를 상징했던 슈퍼 스타는 아니었습니다. 요즘의 호날두 카카 메시와 같은 S급 스타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이없죠.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만해도 가슴 벅차 오르던 시대에 유럽에 가서 그만했으면 잘한겁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가장 성공한 축구 선수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납니다. 말도 안되는 환타지 소설은 그만 좀 썼으면 좋겠습니다.